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의 매력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의 매력
친구들과 함께 빅토르 위고(Victor Hugo) 원작의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을 봤다. 오늘 오후 7:30부터 거의 세 시간, 정확히는 158분간. 영화 속에 폭 몰입했다. 다른 관객들도 조금의 요동도 없이 몰입하는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내가 마치 명품배우나 된 것처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소리를 낼 수도 없고, 나중에는 울음을 참느라 머리가 아팠다. 영화 본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지금도 여운이 진하게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간간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동행한 여섯 명 중, 눈물 흘린 사람은 나 혼자였다. 감동 포인트와 감정선은 확실히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영화를 보면서 가끔 눈물을 흘리기는 하지만, 오늘 본 '레미제라블'처럼 머리가 아프게 눈물이 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대단히 슬픈 영화도 아닌 것 같은데, 빨개진 눈으로 훌쩍거리며 여의도 IFC에 있는 극장을 나왔다. 이 영화는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킬 정도로 극도의 가난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1832년 무렵의 프랑스가 시대적 배경이다. 어린 목숨을 살리기 위해 빵을 한 조각 훔쳤다는 잘못 하나 때문에 주인공 장발장은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죽을 때까지 끝없이 쫓기고 고생하면서도 장발장은 그를 쫓는 자베르경감보다 훌륭한 인간으로 聖者와 같은 선행을 계속한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가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피에타'에서는 '母情'이 눈물 빼게 하더니, '레미제라블'에서는 친아버지 못지 않은 '父情'이 눈물 빼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영화나 문학작품을 보면서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등장인물에게 지독한 고난과 시련이 끊임없이 계속된다거나, 무섭거나, 잔인하거나, 더럽거나, 추해도 그 정도가 심하면 견디기가 힘들다. 고통이 나에게 전달되면서 아프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게 되고, 끝까지 못 보기도 한다. 으윽 공주병^^*
고통이 연속되어 참기 힘든 작품 유형은 장발장, 소공녀......이다. 그런데 오늘 본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은 견딜만 했다. 주인공 장발장이 끝없이 고난을 겪지만, 그의 고통과 실패보다는 헌신과 성공에 더 클로즈업을 한 느낌이어서 그런가 보다. 자베르 경감의 집요한 추적이 징그럽지만 장발장의 탈출이 더 강조되어 때때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고나 할까? 나와 같은 성향의 관객이 통증없이 몰입할 수 있게 전개되었다.
집에 와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열어보니, 이 영화가 나를 몰입시킨 요소가 그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톰 후퍼 (Tom Hooper) 감독은 영화를 보며 실제 공연을 보는 것처럼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뮤지컬 영화 역사상 최초로 라이브 녹음을 시도했다고 한다. 배우들은 세트 바깥의 피아니스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외부 촬영 시에도 배우들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노래를 불렀고, 피아니스트들은 모니터를 통해 배우들을 지켜보며 박자를 맞춰 피아노를 연주했단다.
러셀 크로우는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라이브의 장점은 감정이 제한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연기하는 순간에 모든 걸 쏟아 낼 수 있었다.” 했고, 휴 잭맨도 “박자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배우들의 노래는 70명의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합쳐지면서 더 큰 감동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거다.
아하, 그래서 그렇게 매료됐던 거로구나! 의문이 풀린 기분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화려한 완벽 캐스팅이라고 한다. 제작은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의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했고, 주인공 장발장 역을 맡은 배우는 '휴 잭맨', 판틴 역에는 '앤 해서웨이', 자베르 경감 역에는 '러셀 크로우', 딸 코제트 역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이다.
배우의 노래와 오케스트라 연주, 배우의 연기가 결합하여 교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면서 자연스럽게 눈물 흐르게 했으니 환상적 캐스팅이 맞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 이 영화의 음악 수준이 왜 높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배우들이 완벽한 솜씨로 노래를 잘 불렀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나의 음악적 소양과 교양이 일천한 탓일까? 내가 보통 수준은 되지 않나? 보통 수준은 된다고 보고^^* 그러한 내 소견을 말하라면, '오페라의 유령'의 음악이 무대 화장을 화려하게 한 여가수의 아름다운 아리아를 감상하는 느낌이라면, '레미제라블'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화장끼라곤 전혀 없는 주근깨 투성이 쌩얼의 남대문 시장 아줌마가 치열하게 장사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현장감, 생동감, 사실감이 넘쳐서 더욱 매력있는 영화라고 말하겠다.
*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펌>
영화 <레미제라블>의 화려한 캐스팅이 완성되는 데에는 무엇보다 배우들 본인의 힘이 컸다.
제작자 카메론 매킨토시는 “우리는 배우를 캐스팅할 때, 세 가지 조건에 중점을 두었다. 첫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배우일 것. 둘째, 뛰어난 연기력을 가지고 있을 것. 셋째, 다양한 뮤지컬 공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영화 '레미제라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한국에는 영화 배우로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뮤지컬 배우로도 확고한 입지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이다.
* 아래 사진 순서 : 휴 잭맨(장발장), 러셀 크로우(자베르 경감), 앤 해서웨이(판틴), 아만다 사이프리드(코제트)
그런데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이 배우들이 영화 '레미제라블'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더욱 뜨거운 관심을 샀다.
장발장 역을 맡은 휴 잭맨은 카메론 매킨토시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세 번이나 보았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다. 토니 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뮤지컬 배우로도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휴 잭맨은 드라마 스쿨 과정을 마치고 첫 오디션에서 심지어 영화 <레미제라블> 속 자베르의 노래 ‘Stars’를 부르기도 했다.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의 경우,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판틴 역을 한 적이 있었다. 7살 정도였던 앤 해서웨이는 어머니를 따라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장을 수시로 찾았으며 카메론 매킨토시는 그녀로 어린 코제트 역으로 세울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11살부터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열렬한 팬으로, 15살 학교의 뮤지컬 공연에서 코제트 역을 맡은 적도 있었으며,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는 아주 오래 전, 호주 뮤지컬을 준비 중인 카메론 매킨토시 앞에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또한 코제트의 연인,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역을 맡은 사만다 바크스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이미 에포닌 역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배우다.
게다가 ‘역대 최고의 장발장’이라 불리는 콜 윌킨슨이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는 세상 모두에게 외면 받는 장발장을 유일하게 보듬어주는 미리엘 주교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