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7(목) 간송미술관 관람
간송미술관 개관은 연 2회 5월과 10월에 각 2주씩 실시한다. 이제는 백수부부가 되었으니 시간 여유도 충분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전시회도 엄두를 낼 만하다. 이번에 간송미술관에서는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조선후기 진경시대 회화작품을 전시한다(진경시대화화대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백수생활에 젖어버렸는지, 아침부터 서두른다는 게 그만 개관시간인 10시를 넘겨 10시 20분에야 간송미술관에 도착했다. 20분이 지났을 뿐인데 줄이 40미터 정도, 그나마 줄이 줄어들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도중에 비가 내렸다. 마침 앞에 서있던 이충렬선생님의 일행이 함께 우산을 씌워 주셨다. 내 뒤에 서 있던 일본인 여자분 2명에게도 우산밑을 내주었다. 그들 중 유일한 남자분인 이충렬선생님은 '간송 전형필'의 저자이다. 끝없이 우리 전통문화와 간송 선생님에 대해 주고받는 그분들은 전통문화애호 동아리이거나 이충렬 선생의 강의를 듣는 분들인 것 같다. 아름다운 한국의 아줌마들이다. 차를 빌려 지방에서 함께 올라와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매우 유익했다. 50분 줄을 선 후에야 작품을 볼 수 있었고, 관리하는 아가씨가 재촉하여 더 오래 보고싶어도 볼 수가 없어 70분간 보았다. 작품은 진경산수 53작품을 비롯, 총 104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렇게 소중한 작품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해준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06년 출생으로 일제침략기에 사셨던 분이다. 그는 친부와 양부께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부자였다고 한다.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까 궁리를 하던 중 오세창 선생의 영향과 지도를 받아 문화유산을 수집하였다고 한다. 온 재산을 바쳐, 우리의 문화유산이 일본과 다른 나라로 유출되지 않도록 사 모았단다. 성북동에 대지 1만평을 매입하고 1938년에는 현재의 간송미술관을 3년동안 공들여 지어 보존하였다.
안타깝게도 6.25전쟁으로 모아온 자료를 잃게 되자 비싼 값을 주고 어렵게 찾아오기도 했다. 아쉽게도 간송 선생은 1962년 5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고, 고맙게도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대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간송미술관은 국보, 문화재.... 등등을 소장한 국가적 보고이다. 훈민정음 해례본도 그곳에 있다.
뜰에 놓인 도들도 모두 사연이 있는 문화재들이라고 한다.
화가들의 그림을 보니 산수화나, 풍속화 등 한 가지만 잘 그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림을 그렸고, 그것들이 훌륭했다. 그 동안 인쇄물만 보던 느낌과 사뭇 달랐다. 진짜 그림은 훨씸 섬세하고 공들여 그린 것이 실감났다. 그리고 비단에 그린 그림도 꽤 있다.
특히 겸재 정선의 그림에 홀딱 반했다. 전시 작품수가 가장 많기도 하지만, 섬세하고, 다양하고, 재미가 있었다. 풍경화는 꼼꼼하면서도 시원시원하고, 시야가 매우 넓고도 깊은 게 인상적이었다. 도둑쥐가 잘 익은 수박을 파먹고 있는 그림은 재미가 있었다. 먹는 쥐와 망보는 쥐....
심사정의 그림은 매우 활달한 느낌이었고, 신윤복의 그림은 색기가 느껴졌다. 영화가 저절로 생각났다.
김홍도의 작품은 풍속도를 봐야 빛이 났을 텐데 전시 작품은 대부분 산수화였다.
강세황, 최북, 변상벽, 강희언, 김윤겸, 김희겸, 유덕장 등의 금싸라기 같은 작품도 보았다.
보니까 알겠고, 아니까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작품들을 소중히 지켜준 간송 전형필 선생과 그 자손께 감사드린다.
<간송미술관 입구> 간송 서거 50주년 기념 진경시대 회화대전 -외부내가 처음 찾아갔을 때 이미 이렇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내가 나올 때는 점심시간인 12시30분이었는데 줄이 더 길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상> 우리 나라의 훌륭한 선각자
<정원> 조경 전문가의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미술관 운영과 문화 연구에 정부 보조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정부가 안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술관측에서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조를 받게 되면 의무사항이 많아져 오히려 부담이 된단다.
이 석상은 매우 비싼 값에 매입하셨는데 실제로는 그만큼 가치가 크지 않다고 한다. 간송 선생이 문화재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수업료(?)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이충렬 선생이 말하셨다. 위 아래 석재의 질이 다르고 균형도 좀.... 문화재 지정도 못받았다고 한다.
비가 온다. 우산을 들고 있는 남자분이 이충렬 선생님. 키크고 멋지시다. 정면은 찍기가 미안하여... 뒷모습만.
비가 더 많이 오자, 내 남편이 우산을 구하러 갔고, 그 동안 나도 저 우산밑에서 함께 비를 피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