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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화가 권여현의 맥거핀에 홀림

by 라방드 2013. 3. 23.

 2013. 3. 22(금)

 

권여현 미술전시회를 봤다. 그림을 보고 나왔는데, 한 권의 철학책을 읽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다. 읽은 게 아니고, 철학책을 한 권 쓰고 나온 기분이라 해야 더 맞다. 나는 나대로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으니까.

그간 정신적으로 단세포생물처럼 살아온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행복과 낭만과 아름다움을 찾으며 여유있게 살고자 하던 내 머릿속을 권여현의 그림은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권여현이 사용한 *

맥거핀효과

때문일까? 영화 '에이리언'의 한 장면이 퍼뜩 떠오르기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림으로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얼핏 봤을 때는 이국적이고 종교적인 유럽의 중세 그림이다 싶기도 하다. 실제로도 일부 패러디한 작품을 제외하고는 첫인상이 상당히 이국적 느낌이다. 자크의 콩나무 동화를 믹스한 것 같은 식물 줄기와 뿌리, 뱀, 올빼미, 사람 등이 얽히고 섥혀 몽환적 동화적 느낌을 받기도 한다. 

권여현은 화가이면서 철학자인 것 같다. 그는 요즘 *

질 들뢰즈

철학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들뢰즈가 말하는 나무와 *

리좀

이 그림의 연결고리처럼 많고, 들뢰즈의 책도 종종 그림에 등장한다. '헬로 들뢰즈씨'라는 작품도 있다. 영화는 아니지만 권여현의 회화작품에 맥거핀으로 이용한 것은 '리좀'. 작품 속에서 숱하게 나오는 올가미 같은 것은 미끼가 아니라 누에고치 같고 아기주머니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외부의 고통과 혼란으로부터 차단된 '태내의 고요함'이 연상된다. 초기의 역동적 직설적이던 권여현 그림을 봐 왔던 나로서는 폭넓게 변화된 새로운 그의 작품세계가 놀랍다.

 - 극히 비전문가 입장에서 본 대로 느낀 대로 쓴 글이므로 화가의 작품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요^^* - 

 

* 질 들뢰즈(Gilles Deleuze) : 『차이와 반복』, 『천개의 고원』을 집필한 철학자.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는  "아마도 다음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함.

* 리좀(rhizome) : 나무의 줄기에서 뿌리가 자라나며 땅속으로 뻗어가는 식물을 뜻하는 식물학적 용어이다. 리좀은 땅속에서 증식하면서 다른 뿌리 줄기와 우연히 마주치기도 분리되기도 하며,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리좀의 활동은 새롭고 우연한 마주침과 다양한 유대관계를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들뢰즈는 남녀가 만나 맺어지는 관계를 리좀에 비유하였다. 따라서 리좀은 새로운 타인이나 사건과의 우발적인 마주침, 관계를 의미한다.

* 맥거핀 (MacGuffin) : 알프레드 히치콕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맥거핀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으나, 관객이 영화에 집중하고 긴장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맥거핀 효과에 대한 히치콕의 쉬운 설명>

" 네 사람이 포커를 하고 있는 방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져 모두 죽는다면, 관객이 느끼는 건 단지 깜짝 놀라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맥거핀효과란 다음과 같습니다. 네 사람이 방에 들어가기 전에, 한 사람이 테이블 밑에 몰래 폭탄을 장치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후에 방에 들어온 네 사람이 의자에 앉아 포커를 시작합니다. 폭탄의 시계장치는 점점 '0'을 향해서 움직이고, 인물들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포커를 즐깁니다. 관객들은 폭탄이 장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조바심을 느끼며 이 장면을 지켜보게 됩니다. 점점 초조해지겠죠.

그런데 폭탄이 터지기 직전 '우리 나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말하면서 네 사람은 모두 무사히 방을 빠져 나갑니다. 결국 폭탄은 줄거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그 폭탄 때문에 내내 혼란과 초조함과 서스펜스를 겪으면서 보게 된 거죠. 이 폭탄이 바로 '맥거핀'으로 쓰인 것입니다. "

 

권여현의 정신세계가 다방면으로 뻗쳐 나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궁금하고 신비하고 바닥을 캐보고 싶고, 끝까지 가보고 싶고, 한편 두렵고, 겁나고, 도망치고 싶고, 웅크리고 싶은 마음을 들추어 고백하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권여현이 날마다 24시간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역사와 시간, 공간에 대한 사유 속에서 표출한 그 현란한 회화세계에 빠지게 된다. 올가미에 걸리고도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사람, 폭포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 용솟음치는 사람, 자연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구가하는 사람들, 새로운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철학자, 위선의 가면을 들키는 영웅, 그리고 그것을 보는 올빼미.... 보는이 앞에서 그들이 리좀으로 얼기설기 얽혀 웃고 떠들고 무언가를 찾고 있다.

사진과 명화에 그림을 덧그려 패러디한 작품은 다른 재미를 준다. 게다가 화가 자신이 대부분의 작품 속에 모델로 직접 등장한 것도 재미가 있다. 마침 화가의 비주얼이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인물과 상당히 닮아 있다. 이국적 마스크에 표정연기도 수준급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에헤에에-, 에헤에헤- "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들었던 해골상의 힌두경전 낭송하는 소리와 흡사한 가락이 여기에서도 은은하게 들려왔다. 퍼포먼스 배경음악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의 음악으로 깔리게 된 것이다. 총 3개 층에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하나같이 대작들인데다 그 양도 질만큼 대단했다. 요 몇 년간 그린 작품이라니, 왕성한 창작욕구와 활동량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층마다 퍼포먼스 영상물이 있어서 다양한 보는 재미까지 더해준다.

 

이렇게 대단한 충격적 명작들을 보는데 무료 입장이다. 왜??? 우리나라의 문화적 베이스가 안타까울 정도였다. 우리 부부는 3개층에 시원스럽게 전시된 최고의 작품들을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중앙에 쉬는 의자까지 여유있게 준비되어 있고, 칼러로 인쇄된 팜플렛 2장도 준다. 사진 찍는 것도 허락하여 고맙게도 맘껏 찍을 수 있었다.

 

권여현이 궁금해졌다. 아니 그의 작품세계가 도대체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좀더 알고 싶어져 그의 책을 한 권 샀다. 107쪽 분량으로 총천연색 1만원이다.

책을 보면, 맥거핀 desire,  리좀, 들뢰즈 철학.... 그의 그림에 사용된 어려운 용어들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저력있는 예술가를 한 명 잘 알게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전시된 작품들이 총천연색으로 실려 있어 제목과도 연결해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이렇게 작품명과 창작연대도 기록할 수 있고^^       

 

<코나투스의 숲> 2012

 

 

<리좀의 숲>

 

 

<전시실 2층과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보이는 그림이 '구도자'이다.  아래충의 기름 묻은 두 손...

 

 

<오필리아의 합천댐>

 

 

< 잔다르크의 숲>

 

 

<리좀 숲> 2012

 

 

<루 살로메의 숲> 2012

 

 

<헬로 들뢰즈씨>

 

 

<전시된 설치 작품>

 

 

< 전시실>

 

 

< 신화의 숲> 2013

 

 

<3츨 전시실 모습>

 

 

 

 

<미인도> 2007 사진을 합성하여 그린 경쾌하고 재미있는 그림. 시공이 넘나들며 자유롭게 그린 것 같아 해방감이^^*

 

 

<결혼행렬도>2011

 

 

 

<단오> 2010  신윤복의 풍속화를 찍은 사진과 합성하여 그림

 

 

<퍼포먼스에 참여한 예술가족 사진> 뒤쪽 모자 쓴 사람이 권여현. 

 

 

 

<리좀 - 폭포> 2012

 

 

<리좀 나무 - 폭포> 2013

 

 

<디오니소스의 숲> 2010

 

 

<박쥐-리좀 나무> 2011

 

 

<박쥐-리좀 나무 4> 2012

 

 

<구도자A> 2012

 

 

<아테나와 켄타우로스> 2012

 

 

 <불가능에의 도전> 2005

 

 

<신화의 들판> 2013

 

 

<위기에 처한 암살자> 2009

 

 

<권여현전 장소> OCi 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46-15, 조계사 옆

 

 

<출입구 안내판> 오후 6시까지 열고요, 4월 28일까지 합니다.

 

 

<권여현> 1985 서울대 회화과 졸업, 1987년 서양화과 동 대학원 졸업, 현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 개인전 33회, 그룹전 350여회, 퍼포먼스 6회, 수상 6회.... 왕성하고 열정적인 그의 활동상을 보여준다. 권여현 같은 화가가 국민대에 있어서 국민대 미대가 명성을 얻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맥거핀 desire' 권여현 책>